노르웨이의 문호 헨릭 입센 (1828 - 1906)의 5막으로 이루어진 극작품, "페르 귄트"는 1867년 이탈리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1876년 2월에 노르웨이어로 크리스티아니아 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습니다. 독일어 공연은 1902년 5월 9일 빈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작품은 “페르, 너는 지금 거짓말하고 있어!”라는 페르의 어머니, 아제의 외침으로 시작됩니다. 이것은 페르 귄트의 인격 그리고 작품의 흐름을 요약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페르 귄트는 몽상가입니다. 그는 판타지를 중시하고, 현실을 무시합니다. 페르 귄트가 어머니에게 이른바 자신이 체험했다고 하는 높은 산에서 산양을 사냥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페르 귄트는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사람들에게 거짓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놀라운 재담꾼이자 소설가인 루키아노스 (Lukian)를 방불케 하는 인물이지요. 그의 아버지는 왕족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술버릇 때문에 자신의 재력과 지위를 잃었습니다. 주인공의 방랑 그리고 몽상 역시 아버지의 영향 때문입니다. 제 1막에서 페르 귄트는 부유한 농부의 딸, 잉그리드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잉그리드의 집안은 페르 귄트와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결국 잉그리드는 다른 부자 집의 어리석은 사내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페르 귄트는 잉그리드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황급히 결혼식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페르는 먼발치에서 관리인의 딸, 솔베이지와 춤을 춥니다. 솔베이지는 이른바 사회의 가장자리에 속하는 천민 출신입니다. 그미의 아버지 역시 페르 귄트를 좋은 사내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페르 귄트에 관한 나쁜 소문이 주위에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페르 귄트는 주위의 냉대로 울분을 참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냉대하는 사회 전체에 대해 복수하고 싶습니다. 페르 귄트는 결혼식이 끝난 뒤에 교묘한 방법으로 신부 (新婦)인 잉그리드를 납치해서, 산 속으로 잠입하여, 그곳에서 하루 밤을 함께 지냅니다. 잉그리드는 페르 귄트에 대해 호감을 품고 있었지만, 자신을 납치한 그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미는 페르와 작별하고 마을로 돌아갑니다.
솔베이지가 살고 있는 숲속의 오두막집
제 2막에서 페르 귄트는 산 속으로 도망칩니다. 사람들이 신부 납치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고, 그를 추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험준한 산속으로 잠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도브르 알테”이라는 신비롭고도 무시무시한 지역으로 발을 들여 놓습니다. 그곳에서 초록의 옷을 입은 세 명의 젊은 여성이 나타나 페르 귄트를 유혹합니다. 막간을 이용하여 에로틱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도브르 알테” 구역의 대표는 세 명의 여성들로 하여금 외간 남자 한 사람을 꼬드겨 동침하도록 조처하였습니다. 세 명 가운데 제일 먼저 페르 귄트를 차지한 여성이 그곳 지역을 다스리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페르 귄트는 그들의 유혹과 계략을 어떻게 하든 물리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마지막 주인공이 정복당하려고 하는 찰나, 그는 “어머니, 도와줘요. 죽을 것 같아요!” 하고 비명을 지릅니다. 이 순간 종소리가 들리고 유령들은 불현듯 사라집니다. 어느새 주위의 홀은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페르 귄트는 마력적이고 신비로운 영역 속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페르 귄트는 종소리를 듣다가 깨어납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니, 자신이 어머니의 집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곳에서 그는 솔베이지를 다시 만납니다. 그미는 제 3막에서 페르가 거주하고 있는 숲 속의 집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솔베이지는 순박하고 성스럽게 보이는 처녀입니다. 주인공의 운명은 솔베이지를 만남으로써 순수한 삶의 방향으로 전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순간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페르 귄트는 악령의 세계와 마주치며, 갈등을 겪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도브르 알텐”의 세 명의 딸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을 찾아왔습니다. 그미는 늙은 여자의 몰골로 나타나,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즉 페르 귄트가 그미와 통정한 뒤에 아기를 출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기는 찌그러진 험상궂은 악령이라는 것입니다. 일순간 페르 귄트는 경악에 사로잡힙니다. 그는 솔베이지와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부음 소식이 당도했기 때문입니다. 죽어 가는 어머니를 방문합니다. 그는 위험 속에서 황급히 어머니를 찾습니다. 어머니는 서서히 죽어갑니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자신의 판타지와 상상으로 인하여 커다란 슬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갑니다. 제 4막의 장면은 모로코 해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온갖 나라의 노예들이 매매되고 있습니다. 코통 선장, 바용 씨, 그리고 에버코프 씨 등 유럽의 각국 출신의 사람들이 노예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각기 유럽의 나라를 대표하는 자들로서 제3세계의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서 가장 악랄한 사업을 벌인 자가 바로 페르 귄트였습니다. 말하자면 페르 귄트는 인신매매를 통해서 거대한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은 돈의 힘을 빌어서, 동방의 모든 국가를 다스리는 황제가 되려 합니다. 페르 귄트의 자아는 환상이 요구하는 모든 갈망과 욕정 그리고 탐욕의 화신으로서, 이것들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어느 날 페르 귄트는 사업차 사막의 어느 부족에 머뭅니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족장의 딸, 아니트라를 만납니다. 아니트라와 함께 지내는 밤은 주인공을 황홀의 극치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아니트라는 밤에 횃불을 피워놓고, 예언자로 숭상 받는 페르 귄트 앞에서 현란한 춤을 춥니다. 도취와 광란에 휩싸인 채 살아가던 페르 귄트는 이집트 카이로의 정신 병원에 갇히게 됩니다. 주인공이 그토록 갈구하던 왕관은 결국에 이르러 편집증 환자의 황제의 그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타나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끈다.”는 말을 연상시키게 합니다.
도브르 알텐. 요한네스 브룬이라는 배우가 역을 맡았다.
시간이 흘러 페르 귄트는 늙고 수척한 노인으로 변합니다. 제 5막에서 그는 노구를 이끌고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배 위에서 어느 요리사와 사소한 시비 끝에 싸움을 벌이다가, 하마터면 익사할 뻔하기도 합니다. 항해 사고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주인공은 깨닫습니다. 늙고 병든 자신은 이제 건장한 사내와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페르 귄트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살던 고향 마을을 배회합니다. 우연히 양파를 까다가, 자신의 삶이 속없는 강정이며, 오로지 껍질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것은 게오르크 루카치 (Georg Lukács)가 언급한 바 있듯이, “주인공의 삶은 핵심이 없는 껍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주인공은 수많은 에피소드를 체험하지만, 정작 하나의 특성을 지닐 수 없다.”는 뼈저린 깨달음이었습니다. 마지막에 페르 귄트는 솔베이지를 만납니다.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는 중얼거립니다. “여기에 나의 왕권이 존재하고 있었구나.” 어떤 신비로운 악령이 다시금 그에게 접근합니다. 헝클어진 “실타래 악령”은 그를 묶으려 하고, “단추 주조가”는 그의 몸에 용접 물을 부으려 하며, 악마의 화신인 “도브르 알테”는 주인공이 저지른 죄들을 열거하면서, 주인공의 영혼을 모독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페르 귄트는 죄인으로서,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려준 솔베이지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해뜰 무렵 그는 그미의 앞섶에다 얼굴을 파묻습니다. 솔베이지는 주인공에게는 어떠한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어머니요, 여자이며, 하녀였던 것입니다. 그미는 자장가를 부릅니다. 주인공은 하직합니다.
「페르 귄트」는 입센이 1867년에 이탈리아에 체류할 무렵에 수개월 동안에 집필되었습니다. 노르웨이 비평가들은 처음에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습니다. 극작가는 의도적으로 노르웨이 사람들의 민족적 특성에 해당한다는 이기주의, 편협성 그리고 자기만족을 은연중에 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노르웨이의 동요 작가 아스보른센 (Asbjǿrnsen), 모에 (Moe) 등의 작품을 차용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작품은 노르웨이 문화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작품 속에는 천박한 문학적 분위기가 남아 있고, 생각의 비약이나 현혹 등으로 인하여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입센은 완강하게 반응하였습니다. “나의 작품은 포에지 자체이다. 만약 포에지가 아니라면, 작품이 이제 포에지로 화해야 한다. 포에지의 개념은 작품에 순응해야 하지, 작품이 포에지에 기댈 수는 없다.”
사람들은 먼 훗날에 이르러 작품 속에 반영된 미래 지향적 요소를 찾아내었습니다. 말하자면 입센의 작품은 상징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특성 뿐 아니라, 서사극의 요소 그리고 비합리극의 특성을 선취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입센의 작품의 내용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이론적 논거를 반증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페르 귄트는 단순히 노르웨이의 인간형을 반영하는 인물이 아니라, 현대인의 심리적 구조를 그대로 반증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령 환상과 기이한 사고에 이끌린 채 살아가는 병적인 인간의 전형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페르 귄트는 현대의 제반 희곡 작품에 등장하는 유형적 인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판타지를 추종하는 주인공의 경향은 입센의 예술가 상이 드러내는 전형적 유형이라는 것입니다. 입센의 작품은 특히 악령의 장면에서 놀라운 문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체의 독창성은 이후의 극작품에서 발견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아니트라의 장면은 지금까지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습니다. 여성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모티프는 극작품에서 자주 언급되는 내용입니다. 30년대 비평가들은 입센의 「페르 귄트」를 “노르웨이의 파우스트”에 비유하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리하르트 바그너 (R. Wagner)의 오페라와의 유사성 및 현대 영화와의 관련성을 발견하려고 시도합니다. 특히 프로이트 그리고 라이히 등과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은 등장인물의 어머니와의 심리적 관계를 중요한 사항으로 간주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 아제 그리고 솔베이지에게서 느껴지는 모성이야 말로 주인공 페르 귄트의 파란만장한 삶을 처음부터 규정하는 근원적 동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성과학자, 빌헬름 라이히 (Wilhelm Reich)는 자신의 논문 「페르귄트의 광기」에서 현대의 젊은 남성의 심리적 갈등 관계를 발견하려고 하였습니다. 라이히에 의하면 솔베이지는 정결하나 매력이 없습니다. 이에 반해서 아니트라는 열정적으로 관능을 추구하지만, 약속이라든가 신뢰감과는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주인공은 솔베이지와 아니트라에 의해서 갈팡질팡한다고 합니다. 그의 행동은 오늘날 젊은 남자의 심리적 태도를 방불케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젊은 남자는 자신과 동일한 계급 혹은 높은 계급의 여자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정작 그들의 육체적 욕망은 낮은 계층의 여자들에게서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페르 귄트의 광기 - 이것은 인간 삶이 계속되는 한 차제에 얼마든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흥미진진한 테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